죽어라 고민해도 달라질 게 없는 이유
10만 원 들고 자전거 타고 부산까지 간 남자
대학생 시절 10만 원(약 20만 원)을 들고 친구와 함께 춘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종단을 했던 한 청년이 있다. 장마철에 출발해 초등학교에서 잠을 청하다 쫓겨나고, 서로 냄새나는 몸으로 버텼던 그 여행이 그의 인생 방향을 결정지었다. 그의 이름은 빠니보틀. 현재 구독자 340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대표 여행 유튜버(Travel YouTuber)다.
이번 인터뷰에서 빠니보틀은 트위치(Twitch) 시청자 시절부터 CG 디자이너, 삼성 갤럭시 UI 모션 협력사, 보일러 회사 영상팀, 그리고 해고를 거쳐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자격지심(自格之心, inferiority complex)과 싸우고, 회사 문화에 적응 못 하고, 눈치를 안 보는 것에 이상한 프라이드를 가졌던 한 남자의 진짜 이야기다.
트위치 시청자에서 크리에이터의 꿈까지
빠니보틀의 시작점은 의외로 트위치였다. TV를 거의 안 보고 트위치만 봤다고 한다. 공혁준, 침착맨 같은 스트리머(Streamer)들을 보면서 “저런 사람들처럼 나도 재밌는 거 하면서 돈 벌고 싶다, 그리고 저런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겼다. 2017~2018년쯤의 일이다.
본인도 인정하듯, 32~33세 남자가 가질 만한 목표는 아니었다. 또래 남자들이 “대리 달아서 결혼 자금 모아야지” 할 때, 그의 목표는 “공혁준이랑 친해지고 싶다”였다. 말도 안 되는 목표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 목표를 이뤘다.
“32살, 33살 남자가 가질 만한 목표가 아니에요. 보통 남자들은 뭐 대리 달아서 돈 얼마 모아서 결혼하겠다, 이런 게 목표인데 나는 공혁준이랑 친해지고 싶다. 이게 그때 목표였어요.”
빠니보틀의 커리어 여정
빠니보틀의 직업 이력은 일반적인 크리에이터 경력과는 거리가 멀다. CG(Computer Graphics) 3D 제작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삼성 갤럭시의 UI/UX 모션(Motion Design)을 담당하는 협력 업체를 거쳐, 보일러 회사 영상팀에서 일하다 해고되었다. 그 해고가 유튜브의 시작이었다.
여행은 “잘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분야
빠니보틀의 여행 철학은 어린 시절 본 한 TV 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경인방송(ITV)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으로, 소년원 출신 청소년 두 명을 동남아로 보내 돈 없이 일해서 번 돈으로만 여행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남의 고통에 무감각했던 아이들이 노동의 가치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아, 여행이라는 건 저렇게 좀 힘들게 가야 가치가 있는 거구나.” 이 깨달음이 대학 입학 직후 10만 원짜리 자전거로 춘천-부산 종단이라는 첫 여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여행 콘텐츠에 대한 그의 통찰은 날카롭다. “여행을 너무 잘해서 아무 일 없이 잘 흘러가는 여행기는 매력이 없어요. 여행이 틀어져서 뭐 빠뜨리고, 위기가 찾아오고, 이런 게 재밌잖아요.” 여행은 잘할 필요가 없는 분야라는 것. 그래서 오히려 자신 같은,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맞는 장르였다.
완벽한 여행 ≠ 좋은 콘텐츠. 예상치 못한 사고, 실수, 위기가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여행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켜는 태도가 핵심이다.
회사에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
빠니보틀은 두 가지 극단적으로 다른 회사 문화를 경험했다. 갤럭시 UI 모션 디자인 협력사는 자유롭고 유연한 문화였고, 보일러 회사는 정장에 아침 체조,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지 않는 보수적 구조였다.
🎨 디자인 회사 (갤럭시 협력사)
- 자유로운 복장, 유연한 출퇴근
- 밥 따로 먹어도 OK
- 보수적이지 않은 문화
- 사장님이 퇴사 후에도 응원
- 여행 가고 싶으면 쉬다 오라는 배려
🔧 보일러 회사 (대기업 느낌)
- 정장 필수, 와이셔츠 빼놓으면 지적
- 아침 체조, 전원 점심 동행
- 부장님 퇴근 전 퇴근 금지 (할 일 없어도)
- 높은 월급 (180→220만 원)
- 결과: 해고
보일러 회사에서의 에피소드는 상징적이다. 정시 퇴근 시간이 됐는데 할 일이 없었다. 같은 팀 직원에게 왜 안 가느냐고 물었더니 “부장님이 아직 퇴근을 안 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할 일이 있으면 남겠지만, 다들 쇼핑몰이나 보고 있는 상황에서 눈치 보며 앉아 있는 것이 그에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도 “회사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인정한다. 눈치를 안 보는 것에 대한 이상한 프라이드가 있었고, 제사 때 다 절하는데 혼자 안 하기도 했다고. 반골(叛骨, rebel spirit) 기질이 강했던 셈이다. 결국 그 해고가 유튜브 커리어의 출발점이 되었으니, 본인 말대로 “그 회사에 감사”하다.
스타가 되고 싶은 건지, 유튜버가 되고 싶은 건지
빠니보틀은 ‘스타’와 ‘크리에이터’를 명확히 구분한다. 스타가 되고 싶다면 얼굴을 공개해야 하고, 본인의 캐릭터를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유튜브로 수익을 내고 싶다면 꼭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요즘 AI를 활용한 영화·드라마·쇼츠 제작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세상이 점지해 주는 것
스타성은 내가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너 참 특이하다”고 알아봐 주는 것.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스스로 뚫고 나온다.
24시간 같은 사람
곽튜브를 예로 들며 — 카메라가 꺼져도 시종일관 드립을 치는 사람. 카메라 앞에서만 다른 사람이 되는 건 매력이 없다.
되려고 하면 안 되는 것
스타가 되기 위해 성대모사를 연습하고 준비하는 행위 자체가 매력을 잃게 한다. 자기가 원래 하던 것에 심취해 있는 모습이 진짜 매력이다.
목적이 있는 돈
“돈을 많이 버는 게 좋아서 하는 돈은 매력이 없다. 돈을 모아서 뭘 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적 없는 축적은 공허하다.
그는 동료 크리에이터 곽튜브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평했다. 초반에 곽튜브가 자신의 영상에 나왔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쟤 뭔데 자꾸 나오냐” “못생기고 웃기지도 않은 것 같은데”라는 댓글이 많았다고. 하지만 곽튜브는 카메라가 꺼져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웃기려 시도하는 사람이었고, 결국 인정받았다.
“뇌 썩는 쇼츠”가 많아질수록 나는 좋다
AI로 양산되는 저급 쇼츠(Shorts)에 대해 빠니보틀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저는 그런 게 많이 나오면 개인적으로 더 좋아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은 장인 정신(Craftsmanship)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기 때문에, 저급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상대적으로 자신의 콘텐츠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쇼츠를 “뇌가 썩을 때까지” 본 뒤, 그 상태로 자기 영상 타임라인을 연다. 극도로 자극적인 콘텐츠를 본 직후 자기 영상을 보면, 밋밋한 부분이 바로 드러난다. “진짜 개 단 걸 먹은 다음에 내 음식 맛을 보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리고 크리에이터로서의 시장 감각에 대해서도 말했다. 커뮤니티를 보고, 쇼츠를 보고, 어떤 유튜브가 잘 나가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원래는 커뮤니티를 끊으려 했지만 — 안 좋은 얘기도 많으니까 — 결국 동향 파악(Market Intelligence)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본다고 했다.
자격지심이라는 시멘트 바닥
인터뷰에서 가장 솔직했던 순간은 자격지심에 대한 고백이었다. 빠니보틀은 결혼 당시 반지하에 살았다. 와이프가 신혼집이라며 열심히 꾸미지만, 해가 안 들고 좁은 집은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이거 이렇게 한다고 이뻐질 집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대리 달고 돈 모을 때, 자신은 여행 다녀온 것 밖에 자랑거리가 없었다. 여자를 만나도, 상대가 괜찮다고 해도, “직업도 애매하고 돈도 없는 나를 깔보겠지”라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다. 자격지심은 표면적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 “시멘트 바닥” 아래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고 표현했다.
“자격지심이 진짜 켜켜이 쌓여 있던 사람은 그거 완전 시멘트인데요.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저 밑에 있어요.”
그러나 그 자격지심이 결국 동력이 되었다. 결혼 후 가정을 이루면서, 그리고 결핍이 채워지면서 열심히 살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기본적으로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밖으로는 행복한 척을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고 자평했다. 그 에너지를 콘텐츠에 쏟은 결과가 지금의 빠니보틀이다.
☀️ 기본 에너지: 행복형
- 별일 없어도 기분이 좋은 상태
- 반지하도 “신혼집”으로 꾸미는 긍정
- 빠니보틀의 아내가 해당
- 외부 조건과 무관한 내적 안정
🌧 기본 에너지: 불행형
- 겉으로는 행복한 척, 안으로는 불만
- 결핍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함
- 빠니보틀 본인이 해당
- 채워지면 폭발적 성장 가능
“나 같은 아이가 태어날까 봐 무서웠다”
인터뷰 말미에 나온 부모로서의 고백도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생계를 위해 돌리던 미싱 소리에 짜증을 냈고, 엄마가 수산 공장에서 오징어 냄새를 풍기며 돌아오는 게 싫었다고. 지금 돌이켜보면 먹여 살리려고 그런 건데, 어릴 때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아들을 낳는 게 무서웠다. 자기 같은 아이가 태어나면 어쩌나. 그런데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보니,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엄마가 준비물을 안 챙겨줘도 “내가 엄마한테 한 번 더 알려줬어야 했는데”라고 반응하는 아이. 남 탓을 하지 않는 아이가 된 것이다.
빠니보틀은 이를 “정반합”이라 표현했다. 아버지가 이러니까 아이가 반대로 간다. 아이가 가진 고유한 기질이 환경보다 크게 작용한다는 것. “꼭 나를 닮지 않는 것 같다”는 말에 안도와 희망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조조소를 둘러싼 10년 된 오해
빠니보틀의 인기 콘텐츠 중 하나인 시트콤(Sitcom) ‘조조소’를 둘러싼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예전 디자인 회사 사장님이 조조소를 보고, 자기 회사를 희화화(諧化化)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사장님은 빠니보틀에게 백류까지 보내며 응원했었는데, 조조소 이후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빠니보틀은 이번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공식 해명했다. 조조소의 소재 95%는 곽튜브의 옛날 회사 이야기와 이과장님 이야기이며, 아침 체조 에피소드만 보일러 회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디자인 회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인터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
말도 안 되는 목표도 괜찮다
32세에 “유명 스트리머랑 친해지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고, 실제로 이뤘다. 남들이 보기에 비현실적인 목표가 꼭 틀린 건 아니다.
해고는 또 다른 시작이다
회사에서 잘린 것이 유튜브 커리어의 출발점이 되었다. 실패가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다른 문을 여는 경우도 있다.
되려고 하면 안 되는 것들
스타성도, 매력도, 캐릭터도 —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기가 하던 것에 심취하는 것 자체가 매력이 된다.
결핍은 연료가 될 수 있다
자격지심, 경제적 불안, 회사 부적응 — 이 모든 결핍이 콘텐츠와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불행한 에너지도 방향만 잡으면 폭발력이 된다.
“죽어라 고민해도 달라질 게 없는 이유는, 고민하는 시간에 그냥 뭐라도 해봤으면 이미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빠니보틀은 고민 대신 자전거 페달을 밟았고, 오징어 냄새나는 공장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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